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목 제국 (문단 편집) ==== 도태되는 기병 ==== 유목민 입장에서 정말로 심각했던 문제 중 하나로, 정주민이 기술발전과 혁신을 이루고, 그 결과로 다양한[* 특히 총과 대포 등의 화약 무기류.] 무기가 발전할수록 병사 개인의 숙련도가 적게 필요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유목민들의 병력은 어쨌든 오랜 유목 생활, 고도의 기병훈련을 해야 양성할 수 있다. 그러나 정주민이 가진 화승총병, 포병은 어지간한 신참도 1~2년 정도, 혹은 그보다 더 짧은 기간동안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면[* 실제로 화약무기가 보편화된 이후로 전시상황에서 소총병과의 경우, 불과 2~3주 정도의 짧은 훈련만 마치고 실전 투입도 가능하게 되었다.] 곧 바로 유의미한 전투병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극단적 예시를 들면 [[논산훈련소]] 갓 나와서 [[K2 소총]]을 든 신병과 중세의 역전노장 배테랑 기병을 1:1로 붙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지간해선 신병이 말과 그 기수를 둘다 총으로 쏴 죽여서 이긴다. 현대까지 가지 않아도 [[전열보병]] 시기만 봐도 차이는 확 벌어진다. 수년, 십수년의 전투경험으로 단련된 병사들이라고 해 봐야 제대로 훈련된 소수의 지휘관의 지휘 아래 징집된 지 1년도 안 된 병사들의 뿜어내는 화망에는 속절없이 갈려나갔다. 화기와 전차(탱크)가 발달하면서 기병의 시대는 [[황혼기]]로 접어들었다. 기술의 발전은 [[규모의 경제]]와 맞물렸다. 농업은 갈수록 발전했다. 목축도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했지만 농업 자체가 목축에 비해 인구부양력이 월등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고, 현대의 고도로 발전된 낙농업조차 곡물 사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자가 1%붙었다 해도, 100조 원의 1%는 1조 원이고, 1000원의 1%는 10원이다. 이미 판돈부터가 너무 다른 상황이라 인구 격차가 확연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유목민 입장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운동장이 너무 기울어진 것이다.]] 100명의 유목민 기병이 사망자 10명을 내고 2000명의 정주민 보병을 죽였다. 그런데 다음 날, 유목민 기병은 10명 보충되었는데, 정주민 보병은 5000명 보충되었다. 이미 승패는 머릿수에서 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정주민 보병은 1년의, 혹은 그보다 짧은 시간의 전투 훈련만 해도 되지만, 유목민 기병은 수년에 걸친 전투 훈련을 해야하는 상황. 그렇다고 정주민에게 기병이 없느냐면 그것도 아니라 정주민의 경제력으로 작정하고 투자하면 물량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정주민은 [[야포]]에 [[기관총]]을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유목민은 기병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쳐버리면 패배는 확정된 상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화적 측면에서부터 애시당초에 열세였는데, 전쟁에서조차 우위를 점하게 되지 못한 시점에서 유목제국은 그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병의 우수함은 개활지에서 드러난다고 [[나무위키]]의 전쟁사 관련 문서마다 기술되어있긴 하지만 [[기관총]]은 기병과 유사한 지형적 상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기병이 충격력으로 적들을 밀어내는 수준이라면 개활지의 기관총 진지는 그 시야에 들어가기만 하면 종류를 막론하고 [[척추동물]]은 끔살당하는 수준이라 기관총의 등장은 사실상 유목민식 기병 전술의 완벽한 사형선고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19세기부터 유목제국들은 동네북 신세가 되어서 더이상 전쟁사의 주무대에 서지 못하고 변방으로 전락한다. 몽골만 해도 과거엔 중국의 모든 국력을 기울여 방어전을 펼쳤으나, 무기가 발달한 20세기엔 한낱 지방군벌에게 몽골 전체가 정복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